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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의 벽화가 사라지는 과정

by 소하기 2025. 6. 25.

    [ 목차 ]

낡아가거나 덧칠된 벽화들에 대한 사진 기록과 마을 변화 이야기

오늘은 한도시의 벽화가 사라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한 도시의 벽화가 사라지는 과정
한 도시의 벽화가 사라지는 과정

 

도시재생의 상징이었던 벽화, 그 시작은 화려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전국 곳곳에서 도시재생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쇠퇴한 원도심, 인구가 줄어든 마을, 낡은 주택가를 살리기 위한 여러 시도 중 가장 많이 사용된 수단이 바로 ‘벽화’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주로 지역 미술인, 대학생, 공공예술 단체가 참여해 이루어졌고, 마을 골목골목이 색감과 캐릭터로 가득 채워졌죠.

벽화는 도시미관을 개선하고 외부 관광객을 유입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서울 이화동, 부산 감천문화마을, 대전 대동벽화마을, 통영 동피랑 마을 등은 SNS 인증 명소로 주목을 받으며
마을 주민들도 일시적으로 관광수입, 노점 매출 증가, 지역 축제 등의 이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하게 시작한 벽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관리되지 않는 공공재’로 점차 방치되기 시작합니다.
지속적인 보수가 없거나, 애초에 단기 프로젝트로 마무리된 벽화들은 점점 색이 바래고 갈라지며, 낙서나 오염에 노출되기 시작합니다.

 

낡고 지워지는 벽화들, 회색으로 덧칠되는 기억들

 

벽화가 낡아가는 과정은 단순한 미관 문제를 넘어 도시의 기억이 지워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관리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또는 주민 민원을 이유로 지자체는 손상된 벽화를 회색 페인트로 덧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때 아이들이 사진을 찍던 고양이 벽화, 커플이 인증샷을 남기던 동화 속 장면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단조로운 콘크리트 벽면뿐입니다.

이런 변화는 마을의 분위기까지 바꿔놓습니다.
벽화가 있을 땐 밝고 활기찬 이미지였던 골목이, 벽화가 사라지자 마치 예전의 침체된 분위기로 되돌아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주민 입장에서는 관광객이 줄어 불편은 줄었지만, 동시에 외부와의 연결고리도 약해졌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벽화가 사라지자 빈 공간에 불법 광고물이 붙거나,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쌓이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결국 벽화 하나의 철거는 단순한 그림의 소멸이 아닌, 도시 미관과 지역 정체성의 손실이라는 더 큰 의미를 내포합니다.

 

도시예술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할 때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벽화는 그저 일시적인 도시재생 도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지역 사회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가?

다행히 몇몇 지역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낡은 벽화 위에 투명 보호막을 씌워 손상을 방지하거나,
벽화 옆에 QR코드를 설치해 그림의 의미와 작가 정보를 안내하는 식입니다.
또한 주민들이 직접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워크숍을 열어, 마을 공동체가 스스로 벽화를 갱신해 나가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단지 예술품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서, 주민이 주도하는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벽화를 그리고 지우는 데에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그 벽화가 만들어지고 유지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역 문화의 일부로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맺으며


벽화는 단지 그림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마을 주민의 이야기, 외부 방문객의 기억, 시대의 흐름이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그 벽화들이 시간이 지나 사라진다 해도, 우리가 그 과정을 기록하고 기억한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도시문화가 될 수 있습니다.

낡은 벽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도시가 품었던 꿈과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