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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만 이용해보기

by 소하기 2025. 6. 26.

    [ 목차 ]

– 계단 100칸 위에서 다시 마주한 나의 생활 –

오늘은 한 달 동안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만 이용해보기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한 달 동안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만 이용해보기
한 달 동안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만 이용해보기

시작은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2025년 현재, 대부분의 도시 주거지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심지어 5층 이하의 건물도 내부에 ‘소형 리프트’나 ‘외부 승강기’를 추가 설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저층 빌라, 특히 1990~2000년대 지어진 다세대 주택들은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구조로 남아 있다.

문득 궁금했다.
“요즘 시대에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에서 한 달을 살아보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그렇게 나는 실제로 엘리베이터 없는 오래된 빌라 5층에 방을 구해 한 달간 생활해보기로 했다.
가벼운 체험처럼 시작했지만, 예상보다 더 많은 생각과 감각을 남긴 시간이 되었다.

첫날 이삿짐을 옮기며 이미 후회가 밀려왔다.
박스 몇 개 들고 5층까지 오르내리는 일이 이렇게 고역일 줄은 몰랐다.
이삿짐 기사님이 “요즘 이런 구조 진짜 드물어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이유를
몸소 체험하며 깨달았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숨겨진 일상의 흐름’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계단은 불편함이자, 하루의 리듬이 되었다

 

한 달 동안 매일 오르내린 계단 수는 평균 100칸.
하루 세 번 이상 외출을 하면 거의 500칸 이상을 오가게 된다.
물론 처음 며칠은 허벅지가 뻐근했고, 장을 봐 온 날이면 땀이 뻘뻘 났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몸이 적응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계단은 하나의 생활 리듬이 되었다.
출근길에는 심박수를 올려 몸을 깨우는 알람 역할을 했고,
퇴근 후 올라가는 길에는 하루의 피로를 천천히 정리하는 명상 같은 시간이 되었다.

특히 좋았던 건, 불필요한 외출이 줄었다는 것이다.
“어차피 나갈 거 한 번에 다 처리하자”는 생각이 들면서, 소비 패턴도 바뀌었다.
무심코 배달 앱을 열다가 “5층까지 오느라 고생하실 텐데…” 싶어
직접 나가 사오는 일이 늘어났다.
계단이 내 행동을 바꾼 셈이다.

또한, 같은 건물의 이웃과 얼굴을 마주칠 일이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엘리베이터처럼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계단이다 보니,
가볍게 인사하고 마주보며 웃는 일이 잦아졌다.
그 안에서 “요즘은 보기 드문 동네 감성”이 피어나는 걸 느꼈다.

 

불편함 속 가치: 계단은 도시의 숨은 인프라였다

 

물론 모든 것이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배달기사들은 종종 5층까지 오르기를 꺼렸고,
택배는 1층에 두고 가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우산을 깜빡하고 내려갔을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무릎이 좋지 않은 노약자라면 현실적으로 매우 힘든 구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을 보내며 깨달은 건
계단이 단지 ‘불편한 구조’가 아니라 도시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프라라는 점이었다.

엘리베이터는 편리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분리한다.
말도 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목적지 버튼만 누르면 끝이다.
반면, 계단은 천천히 오르고 내려야 하며, 누군가와 스쳐 지나갈 여지를 남긴다.
속도가 아닌 밀도를 만들어내는 구조다.

또한, 건강이라는 측면에서도
하루 10분씩 오르내리는 이 계단은 나도 모르게 운동을 생활화하게 만들었다.
별도로 헬스장을 찾지 않아도, 계단 하나가 유산소 운동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도시는 점점 스마트해지고, 자동화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기계에 맡기고 난 뒤,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 걸까?
계단은 그런 질문을 던지게 했다.

 

마무리하며: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한 달 뒤, 다시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짐을 옮기면서 단번에 올라가는 그 편리함에 감탄했지만,
어딘가 허전한 기분도 함께 따라왔다.

계단을 오르며 느꼈던 느린 시간, 명확한 감각, 사람의 기척들이
엘리베이터 속에선 모두 사라졌다.

물론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살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그 100칸 계단의 고요함이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계단 위에서 나는
조금 더 걷고, 덜 소비하고, 더 마주보며 살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