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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 증기로 지워지는 기억, 마지막 김이 피어오르다 –
오늘은 공중목욕탕의 마지막 겨울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사라지는 온기의 공간, 골목 끝 목욕탕 이야기
2025년 1월, 부산 동구 범일동.
재개발 예정지로 지정된 이 골목의 끝자락에는 아직도 하루 두 번 연기를 내뿜는 공중목욕탕 ‘삼화탕’이 있다.
삼화탕은 1994년 개업해 올해로 정확히 31년째, 오는 봄을 끝으로 폐업을 결정했다.
입구 간판의 불빛은 몇 개가 나가 있고, 유리문은 단단한 테이프로 덧대어져 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맵싸한 보일러 냄새와 따뜻한 김, 그리고 익숙한 물소리가 반겨준다.
하루에 40명 남짓 오는 손님 대부분은 인근 노년층.
샤워기보다 손바가지에 익숙한 그들은 ‘목욕’이 아닌 ‘하루의 의식’을 치르듯 이곳에 온다.
주인 김정분(68) 씨는 말한다.
“예전엔 여기 앞에도 줄이 서고, 빨래도 맡겼어요. 지금은 손님도 줄고, 기름값은 두 배가 넘었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삼화탕이 마지막으로 기름보일러를 교체한 건 2009년.
그마저도 중고를 들여온 것이었다.
매년 올라가는 유지비, 세신사 인건비, 그리고 점점 줄어드는 손님.
목욕탕은 더 이상 ‘생활 기반’이 아닌, 사라지는 전통이 되었다.
세신사의 손끝, 시간이 쌓인 타일 위에서
목욕탕의 풍경에서 가장 역동적인 존재는 세신사다.
삼화탕의 세신사 이순미(55) 씨는 이곳에서만 18년째 일하고 있다.
그녀는 말했다.
“내 손에 지나간 몸이 수천은 될 걸요. 아기부터 할머니까지, 다 벗은 모습으로 나를 믿고 누워요. 그게 감사한 거예요.”
타일 위에 놓인 세신대는 오래되어 테두리 일부가 깨져 있고,
검은색 때장갑은 햇빛에 바래 회색빛이 돌았다.
그녀는 팔꿈치로, 손바닥으로, 때로는 팔 전체로 사람의 긴장을 밀어낸다.
몸을 닦는 일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을 어루만지는 일처럼 느껴진다.
세신사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일용직, 보험 없는 노동자다.
삼화탕 폐업 이후 그녀의 일자리는 사라진다.
“다른 데 알아보라고요? 새 목욕탕은 자동 세신 기계도 있고, 손으로 하는 데는 점점 줄어요. 나 같은 사람은 필요 없죠.”
그녀의 말엔 자신의 기술과 생애가 함께 단절되는 느낌이 담겨 있었다.
목욕탕은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의 생존이 엉켜 있던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타일, 연기, 수건… 마지막을 기록하다
폐업을 앞두고 나는 삼화탕의 내부를 사진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손님이 없는 평일 낮 2시, 김 사장의 양해를 얻어 곳곳을 찍었다.
먼저 보일러실.
쇳덩이 위에 붙은 손때, 노랗게 낀 계기판, 기름통 위에 놓인 담배 한 갑이 눈에 띈다.
실내로 들어서면 남탕과 여탕의 구조는 거의 대칭이지만, 세면대 수나 거울의 위치가 미묘하게 다르다.
타일엔 작은 금이 가 있고, 수도꼭지 주변은 돌처럼 단단한 석회질이 남아 있다.
물탱크 위쪽에는 오래된 선풍기가 붙어 있었고, 커다란 대야와 간이의자가 한켠에 쌓여 있다.
탈의실에는 ‘2025년 2월 28일 폐업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글귀가 손글씨로 붙어 있었다.
옆에는 한 손님의 짧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여기서 아버지랑 마지막으로 같이 씻었어요. 고맙습니다.”
목욕탕은 단순한 씻는 공간이 아니었다.
가족이 마주 앉아 등을 밀어주고, 대화 없이도 정을 나누던 공간이었다.
삼화탕은 곧 사라지겠지만, 이곳에서 흘렸던 물과 김과 웃음은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마치며: 김이 피어올랐던 그곳을 기억하며
30년의 세월을 품은 공중목욕탕은
이제 다시는 지어지지 않는 건축양식이 되었고,
세신사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며,
그 공간을 찾던 사람들의 일상도 바뀌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라지는 것 속에 삶의 본질이 담겨 있다는 것.
온몸을 맡기던 그 따뜻한 물 한 바가지가,
우리가 서로를 신뢰하고 위로하던 방식이었음을.
2025년의 겨울, 삼화탕의 마지막 김은 그렇게 하늘로 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 수증기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다시 떠올렸다.